‘음색깡패’ 정혜선 “10년 앞섰다던 1집, 25년만에 다시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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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1990년대 고(故) 조동진이 이끌던 레이블 하나음악은 1992년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운 신예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을 첫 작품으로 내놓았다.

1989년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나의 하늘’이란 곡으로 은상을 받은 정혜선의 1집이었다. 당시 유재하의 음반제작자 출신으로 조동진과 함께 하나음악을 이끌던 조원익이 프로듀싱를 맡고 박용준, 장필순, 조규찬 등이 연주와 코러스로 참여했다.

이후 2집을 준비 중이던 정혜선이 갑자기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지자 1집은 온라인에서 수십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희귀’ 앨범이 됐다.

바로 이 앨범이 25년 만에 리마스터링돼 8일 오후 6시 음원사이트에 공개된다. 음원으로는 처음 유통되는 이번 앨범에는 신곡 ‘너면 돼’도 함께 수록됐다.

앞서 올해 4월, 과거 미발매됐던 2집 곡으로 25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정혜선이 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롤링홀에서 생애 첫 쇼케이스를 열었다.

“이대로 살다 죽으면 한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블로거 등에서 고정 팬들이 ‘왜 음악을 안 하느냐’고 해서 너무 죄송했고요. 정신이 번쩍 들어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습니다.”

그는 올봄 2집의 곡들을 앨범으로 냈을 때만 해도 본격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이 앨범 이후 ‘1집을 구할 수 없으니 다시 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자 편안하게 들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그는 “연말이 가기 전에 2집에 이어 1집을 정리해 들려드리고, 신곡 작업을 하고, 공연까지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나와의 약속이자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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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음악에서 앨범을 낸 것은 ‘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심사위원이던 조동진의 제안 덕이었다. 동아기획에 이어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산실로 평가받는 하나음악에는 조동진과 조동익, 장필순 등 쟁쟁한 선배들이 있었다. 그는 1집을 내보자는 말에 한 달간 10곡을 썼고 ‘전곡이 좋으니 이대로 가자’는 평가를 받아 녹음을 진행했다.

‘오, 왠지’와 ‘해변에서’, ‘나의 하늘’ 등이 수록된 1집은 어쿠스틱과 록을 아우른 음악 스타일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음색’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조원익은 정혜선에게 “네 음악은 최소한 10년은 앞서는 것 같다. 대중성으로는 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잘 안됐다”고 웃은 정혜선은 “1집과 2집 모두 전곡이 작사, 작곡이지만 음악 스타일은 다르다”며 “난 작사와 작곡을 동시에 하는 스타일인데, 노랫말에는 나의 가치관과 정신이 표현되고 작곡에는 ‘필'(느낌), 즉 나의 감수성과 본능이 담긴다. 그게 어우러져 작품이 나오는 것도 희열이지만 내 음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만의 아트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신곡 ‘너면 돼’는 하나음악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이규호와 듀엣 했다. 이날 라이브 무대에서는 정혜선의 서늘하고 허스키하면서도 카랑카랑한 음색이 이규호의 서정적인 보컬과 어우러졌다.

그는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던 힘으로 “음악에 대한 사랑”을 꼽았다.

또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어준 조동진과 가요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인 유재하에 대한 고마움도 나타냈다

“조동진 선배는 인품과 표현하는 음악이 일치한 분이셨어요. 음악적인 감성과 생활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본받고 싶어요. 또 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가사는 시 같아 시인이셨죠. 음악을 떠나면서 조동진 선배님을 긴 세월을 못 뵙다가 올해 4월 찾아뵈니 ‘가장 아끼고 끼가 많다고 생각한 후배인데 지금이라도 다행’이라고 힘이 돼주셨죠.”

또 유재하에 대해서는 “생전 뵌 적이 없지만 곡의 전개와 작사가 훌륭한 분이라고 느꼈다”며 “중고교 때 록을 좋아해 레드 제플린, 롤링스톤스 등 팝을 많이 들었는데 대학교 시절 게시판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포스터를 보고서 작사, 작곡, 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격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기타를 사서 연습하며 곡을 쓴 것이 ‘나의 하늘’이다. 녹음테이프 심사부터 했는데 끝까지 올라가서 2등을 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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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쇼케이스에는 스윗소로우의 김영우(16회 대상), 유명 스트링 편곡자 박인영(2회 금상),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부 교수인 지영수(5회 대상) 등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문들이 축하 차 참석했다.

김영우는 “요즘 음색 좋은 분을 ‘음색 깡패’라고 하는데 혜선 누나는 ‘원조 음색 깡패'”라며 “독특해서 한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이 대회 동문회장이기도 한 그는 “올해가 유재하 선배님 30주기”라며 “장학회에서 리메이크 음반을 준비 중이며 ‘유재하의 2집이 나오면 어떨까’란 느낌으로 대회 수상자들이 곡도 만들고 있다. 오는 18일 ‘제28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리는데 앞으로 촉망받는 인재가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mim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11/08 16:05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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