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가 경비 2억 먹튀?

사건: 국제대회 참가 합창단 출국 직전 비행기 삯, 숙박비 등 미지급 알아 한 학부모 도움으로 하루 뒤 떠나

먹튀


지난 4월 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대합실. 초등학생 딸과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나에게 한 학부모가 건넨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 “표만 예매해 놓고 여행사 측이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네요.”

A합창단은 1998년 창단 이후 2014년 필리핀 보홀 국제합창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2015년 부산 국제 합창대회에서 청소년 부문 은상을 받았다.  5개월간 밤새워 연습한 딸은 “스페인 대회에서 꼭 우승하겠다”며 기대와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스페인 알리칸테 주에서 나흘 뒤 열릴 ‘22회 하바네라 국제청소년 합창대회’를 앞두고 초·중생 단원 50여 명과 학부모 20여 명으로 구성된 일행은 공항에서 황당한 사기를 당했다. “그럼 숙박과 현지 교통편은 어떻게 됐을까.” 학부모들이 잇따라 제기한 의문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우리 일행이 여행사에 건넨 2억4500만원 중 스페인 현지로 송금된 돈은 한푼도 없었다. 딸이 낙담할까봐 이 사실을 딸에게 차마 알리지 못했다.

발이 묶인 우리는 인천공항 근처에서 아이들과 하룻밤을 지샜다. 억울함에 화가 치밀었다. 지난해 12월 B여행사 대표 최모(43)씨가 학부모를 상대로 설명회하던 때가 생각났다. 최씨는 A합창단 관계자가 연결시켜 준 중소 여행사 대표다. 최씨가 10박 12일 일정표를 제시했고 학부모들은 한 사람당 350만원씩을 거둬 여행사로 전달했는데 결과적으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됐다.

사기를 막을 기회도 있었다. 지난 3월말 한 학부모가 항공사에 확인한 뒤 “비행기 표 값이 아직 항공사에 송금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A합창단 관계자는 “여행사가 그럴 리 없으니 기다려 보자”며 무마했다.

 

현지 교통.숙박 임시 변통 녹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대상 받아 귀국 후 여행사 대표 사기혐의 고소사기

5일 오전 대회 참가를 대행해 준 B여행사 대표 최씨가 연락을 받고 찾아왔다. “당신 어떻게 아이들을 상대로 사기질이야.” 성난 학부모들의 거친 원성을 쏟아냈다. 최씨는 “돈을 개인적으로 다 썼고요. 더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얼버무렸다. 대회 참가가 급해 최씨를 더 채근하지도 못했다. 이러는 와중에 “(사정이 생겨)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자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비규환이었다.

“도연이(가명) 엄마가 4200만원을 급히 보내 준다니 일단 비행기표를 구해 스페인으로 떠납시다.” 다행히 한 학부모의 도움으로 5일 오후 늦게 바르셀로나로 출발했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된 탓에 현지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1층에 술집이 있는 숙박시설에 아이들을 재워야했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8층까지 아이들이 짐가방을 들고 올랐다.

대상

바르셀로나에서 대회장까지 6~7시간을 버스로 이동해 아이들은 녹초가 됐다. 다행히 아이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4월 8~9 알리칸테 주 또레비에하 시립극장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합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귀국한 뒤 여행사 대표 최씨에게 수차례 전화했지만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대상 수상 소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A합창단 측은 “조용히 넘어가자”며 오히려 학부모들을 회유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계약서·영수증 등 증거 서류를 갖춰 여행사 대표 최씨를 서울 동대문 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출처=중앙일보>